[세계일보] 초강력 대책, 부동산시장엔 되레 호재? [일상톡톡 플러스]

작성일
2020-01-15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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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김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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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7일 서울 송파구 소재 한 상가 중개업소 벽면에 10억원을 훌쩍 넘는 아파트 매매 안내문이 붙어 있다. 남정탁 기자

문재인 정부 출범 이래 가장 강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12·16 부동산대책에도 불구하고 서울 강남 청약 시장은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청약 경쟁률이 최고 수백 대 1에 달하고, 당첨가점도 만점(84점)에 가까울 정도로 치솟고 있는 상황이다.

투기과열지구 등 규제지역 내 1순위 자격 요건을 강화하고 가점제를 확대 시행하면서 당첨 확률이 낮아졌지만, 강남권 신규 분양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시세 차익이 수억원에 이르면서 이른바 '로또 청약'에 대한 기대감은 오히려 더 높아지는 모습이다.

12·16 대책 이후 강남권 재건축 단지로는 처음 분양한 강남구 개포동 '개포프레지던스자이' 아파트 청약 당첨가점이 최고 79점을 기록했다.

금융결제원 아파트투유에 따르면 개포프레지던스자이의 전용면적 59㎡B·114㎡B에서 최고 당첨가점 79점이 나왔다. 무주택 기간 15년 이상(32점), 부양가족이 6명 이상(35점), 청약통장 가입 기간 15년 이상(17점)이어야 나오는 만점(84점)과 불과 5점 차이다. 앞서 공공택지 아파트로 분양한 위례신도시 ‘호반써밋송파’ 1·2차와 지난해 분양한 래미안라클래시, 르엘신반포센트럴의 최고 당첨가점과 동일하다.

대출 강화로 수요자가 몰리지 않을 것이란 정부 기대와 달리 강남 지역 청약시장에 예비 청약자들이 대거 몰렸고, 당첨가점도 치솟았다.

◆초강력 부동산 규제? 신규 분양 아파트 투자가치 여전

정부의 잇단 규제에도 강남 신규 분양 아파트는 여전히 투자가치가 있다는 반증이다. 특히 개포프레지던스자이는 12·16 부동산대책 이후 첫 강남권 분양인 만큼, 청약 결과에 따라 정부 고강도 규제 정책 효과와 향후 강남권 분양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가늠할 '바로미터'였다.

아직까지 규제 효과를 논하기는 이르지만,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등 규제지역 내 시가 15억원이 넘는 초고가 아파트를 구입하기 위한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한 정부 정책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일각에선 정부가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 온갖 대책을 쏟아냈지만, 일부 정책은 오히려 호재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규제로 분양가가 시세보다 낮은 데다, 분양가 상한제 시행 발표 이후 신규 주택 공급 축소 우려와 당첨만 되면 수억원의 시세 차익을 챙길 수 있다는 기대심리가 맞물리면서 강남 지역 청약 열기를 끌어 올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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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금리 기조가 길어지면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현금 보유 고가점 청약 대기자들이 비교적 안전 자산이자, 수요가 많은 강남 아파트 청약 시장에 몰렸다.

주택시장에선 강남 청약시장이 현금부자들만 참여할 수 있는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자금력을 갖춘 현금부자만 아니면 청약 자체가 불가능하다. 정부의 강화된 대출 규제로 아파트 계약금과 중도금, 잔금을 현금으로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오는 4월 이후 시세차익이 높은 강남 지역 청약 열풍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당첨 가점을 갖춘 현금부자들의 강남권 주요 신규 분양 단지 청약 독점을 우려했다.

◆"강남권 '로또 청약' 수혜, 고가점 갖춘 현금부자들이 독점할 것"

한편 지난해 주요 시중은행들이 취급한 주택담보대출 중 15억원이 넘는 주택에 대한 대출 비율이 5%도 되지 않는 미미한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가 서울 강남 부동산을 겨냥해 '15억 초과 주택'에 대한 대출 전면 금지 조치를 내렸지만 실제 강남 초고가 주택 구매자들의 주담대 의존도는 지극히 낮다는 얘기다.

정부의 고강도 규제가 잇따르면서 강남 부동산 시장은 풍부한 현금을 가진 자산가 위주로 재편된 지 오래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따라 정부의 대출 규제 조치를 둘러싼 실효성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이 15억원 초과 주택을 담보로 지난해 취급한 대출은 은행 주택담보대출 취급액 가운데 각 3~5% 수준인 것으로 확인됐다.

작년 1~11월까지 주요 시중은행 5곳에서 나간 주택담보대출 금액이 약 30조955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15억 초과 주택 구매자들이 빌린 금액은 아무리 많아도 1조5500억원에 불과한 것이다. 대출액의 95%인 29조4050억원은 15억 이하 주택 구매자들이 빌린 셈이다.

정부가 내놓은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은 초고가 주택의 대출을 봉쇄해 서울, 그중에서도 특히 '강남 집값'을 잡겠다는 것인데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대출 없이 현금으로 집 사는 이들 여전히 많아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의 '2019 한국부자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말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을 갖고 있는 개인은 32만3000명으로, 1년 전(31만명)보다 1만3000명(4.4%)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자산가의 45%는 서울에 살았고, 그중 46.6%는 '강남 3(강남·서초·송파)구에 거주했다. KB부동산 리브온(Liiv ON)이 전국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에 있는 15억원 초고가 아파트를 집계한 결과 서울에 있는 15억원 초과 아파트의 77%가 강남 3구에 몰려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대출 규제로 자금력이 부족한 구매자들이 강남 문턱을 넘어오지 못하게 되면서 현금 부자들이 또다시 강남 부동산을 주워 담을 기회가 열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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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정작 현금이 부족해 대출을 받아 집을 늘리려거나 입지가 좋은 곳으로 갈아타려 했던 실수요자나 중산층이 피해를 보게 됐다는 점이다.

15억원 초과 주택에 대한 대출이 금지된 것뿐만 아니라 9억원 초과 주택에 대해서도 주담대 담보인정비율(LTV)이 40%에서 20%로 축소됐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정부가 고가 아파트의 분포와 시세 움직임을 기준으로 대출 규제를 정하다보니 정작 가격별 대출 규모를 간과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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